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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멍 때리기 대회 :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의미

andorphine 2025. 5. 1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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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는 빠르게 돌아갑니다. 스마트폰, 뉴스, 알림, 업무와 관계 속에서 하루도 조용할 틈이 없어요. 이런 시대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가치를 되새기기 위한 독특한 대회가 있습니다. 바로 서울시가 주관하는 한강 멍때리기 대회입니다. 이 대회는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우리 사회와 현대인의 삶을 성찰하게 해주는 철학적인 퍼포먼스로도 해석되고 있어요.

 

 


대회 개요

한강 멍때리기 대회는 참가자들이 일정 시간 동안 아무 행동 없이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이 핵심인 행사예요. 참가자들은 지정된 구역에 앉아 스마트폰, 대화, 책 등을 모두 내려놓고 그저 멍하니 시간을 보냅니다. 외부 자극에 반응하지 않고, 무표정과 무동작을 유지해야 해요.
심사 기준은 독특합니다. 전문 심사위원이 심박수 변화와 무표정 유지 능력, 집중력 등을 분석하고, 시민들이 투표를 통해 예술 점수를 평가해요. 결국 기술 점수와 시민 투표 점수를 합산해 최종 우승자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 대회는 2014년 아티스트 우나진 씨의 기획으로 시작되어, 이제는 매년 봄 한강공원에서 개최되는 하나의 상징적인 행사로 자리잡았어요. 바쁜 일상 속에서 한 번쯤은 멈춰 서서 내면을 들여다보자는 메시지가 강하게 전해지고 있어요.

역대 수상자 및 참가자 현황

2025년 대회는 5월 초에 열렸으며, 약 3,000명이 참가 신청을 했고 이 중 80팀이 본선에 진출했어요. 경쟁률은 무려 57대 1이었으며, 10대부터 60대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참가자들이 눈에 띄었어요.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군인, 구급대원, 환경공무관, 사회복지사, 기관사, 교도관 등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군의 참가자들이 많았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들은 “쉬는 법을 잊어버렸다”는 공통된 이유로 참여했으며, ‘멍 때리기’가 일종의 해방구가 되었다고 말했어요.

 

수상자들은 시민 투표로 선정된 예술 점수 상위 10팀 중, 기술 점수 상위 순으로 결정됩니다. 수상자는 따로 퍼포먼스를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세’가 가장 안정적이고 진정성 있었다는 평을 받았어요. 이 대회의 아이러니는 바로 그 점이에요. 가장 ‘열심히’ 멍때리는 사람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죠.

기획 의도와 한국 사회가 마주한 메시지

한강 멍때리기 대회는 단순한 휴식 이벤트가 아닙니다. 그 기획의도는 현대 사회를 향한 풍자에 가까워요.
끊임없이 뭔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압박, 생산성과 효율성 중심의 사회 분위기에서, 이 대회는 거꾸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게으름이나 무능력으로 치부되곤 했어요. 하지만 멍때리기 대회는 말해줍니다. ‘비생산적인 시간’이 오히려 내면의 에너지를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요.

또한 이 대회는 디지털 디톡스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어요. 휴대폰 없이 한 시간 이상을 보내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참가자들의 말처럼,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디지털 정보에 노출돼 있었어요. 잠깐이라도 의식적으로 쉬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죠.

한국 사회 속 멍때리기의 사회문화적 의미

한국 사회는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바쁘고 경쟁이 치열한 국가 중 하나입니다. 고등학생은 입시, 청년은 취업, 직장인은 성과와 생존 경쟁에 시달리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멍때리기 대회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집단적인 쉼의 욕망이 터져 나오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도 읽을 수 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조차 “누가 더 잘하는가”를 겨룬다는 점에서, 이 대회는 역설적으로 경쟁 중심 사회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쉼도 기술이다’라는 새로운 시선을 제공합니다.


한강 멍때리기 대회는 단순한 퍼포먼스를 넘어서, 현대 사회에서 정신적 여유와 ‘의미 없는 시간’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만드는 특별한 행사예요. 매일 정보에 쫓기며 사는 우리가 이따금 '멍 때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적 공간을 열어주는 이 대회는 앞으로도 그 의미를 더욱 확장해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한강변의 맑은 공기와 잔잔한 바람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진정한 자신을 만나는 시간.
그것이 바로 한강 멍때리기 대회의 본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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