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부자’의 기준이 세대 간에 뚜렷하게 달라지고 있다. 부모 세대는 자산 10억 원이면 경제적 여유를 누릴 수 있다고 여겼지만, 현재의 2030·3040 세대는 최소 20억 원 이상은 있어야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받는다고 생각한다.
이는 단순한 체감 차이가 아니다. 고물가·고금리 시대를 맞이하며, 자산 가치와 생활비용이 급격히 상승한 데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25년 사회지표 변화와 인식 조사’에 따르면 “나는 부자라고 생각한다”는 기준으로 부모 세대는 평균 9억 10억 원의 금융·부동산 자산을 떠올렸다. 반면 MZ세대와 X세대(20대40대)는 “최소 20억 원 이상”이라는 응답 비율이 63%에 달했다. 이는 주거비, 교육비, 노후 준비 등 각종 사회적 비용이 크게 오른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1. 주거비 폭등과 자산 기준 변화
현재 서울 강남 3구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30억 원을 넘어섰고, 서울 전역 평균 매매가 역시 13억 원을 훌쩍 넘는다. 불과 10~15년 전 부모 세대가 주택을 마련할 때의 가격과 비교하면 두세 배 가까이 상승한 셈이다.
전세 제도마저 무너지며 ‘10억이면 서울 내 집 마련 가능’이라는 공식은 이제 옛말이 됐다. 이에 따라 젊은 세대는 ‘내 집 마련+노후 자산’까지 감안하면 20억 원은 있어야 경제적 안정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2. 고금리·고물가가 만든 새로운 현실
최근 몇 년간 이어진 고금리 기조도 영향을 끼쳤다. 기준금리 인상이 이어지며 대출 부담이 크게 늘었고, 이에 따라 금융비용이 가계 재정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물가 상승률도 연간 3~4%대를 유지하면서 생활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과거 부모 세대가 경험한 저물가·저금리 환경과는 전혀 다른 시대가 펼쳐진 것이다. 이러한 경제 환경은 부의 기준을 자연스럽게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3. 자녀 교육비와 노후 준비도 부담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자녀 교육비와 노후 준비에 대한 인식이다.
현재 학부모들은 자녀의 사교육비에 매달 수백만 원을 투자하고 있으며, 명문 대학 진학 및 유학까지 고려하면 부담은 더욱 크다. 게다가 국민연금만으로는 안정적 노후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퍼지며, 개인 연금과 부동산 투자 등 별도의 준비가 필수로 여겨지고 있다.
이 모든 비용을 감안하면 ‘10억 원대 자산’으로는 중산층 이상의 삶을 누리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4. 금융 전문가들의 분석
금융권 전문가들은 이러한 인식 변화가 단순한 심리적 현상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국내 주요 시중은행 WM센터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자산 20억 원 이상의 고객이 아니면 자녀 교육비, 내 집 마련, 노후 자금까지 모두 충당하기 어려운 구조로 사회가 재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최근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과 자산 양극화 현상으로 인해, 젊은 세대는 더욱 높은 목표 자산을 설정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5. 사회 구조적 문제로 확대
이처럼 ‘부자의 기준’ 상향은 단순한 개인 선택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문제로도 이어지고 있다.
과거보다 더 많은 자산이 필요해지면서, 부모 세대의 자산을 상속받지 못한 경우 계층 이동이 매우 어렵게 됐다. 자산 격차가 교육 격차와 주거 격차로 이어지며, 한국 사회의 고착화된 빈부 격차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금융세제 개편, 주거비 부담 완화 정책, 교육비 지원 확대 등의 정책을 추진 중이나, 아직 체감할 만한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정책 개편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단기적인 지원으로는 해결이 어렵고, 사회 전체의 자산 분포와 세대 간 격차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는 10억이면 됐다는데, 요즘은 20억 있어야 부자”라는 세대 간 인식 차이는 오늘날 한국 사회가 처한 경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단순히 체감 물가 상승을 넘어, 주거비·교육비·노후 준비라는 복합적 요소들이 작용하고 있으며, 이는 자산 불평등 구조를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정부와 사회는 이 문제를 단순한 개인의 자산 목표 차이로만 볼 것이 아니라, 보다 구조적이고 포괄적인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10억 시대’에서 ‘20억 시대’를 넘어 ‘30억 시대’가 오는 것도 그리 먼 미래의 일이 아닐 수 있다.